2009년 5월 22일 금요일

미국사 29- 멕시코 전쟁

*아래의 글은 제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나중에 책으로 출판될 수도 있으니, 복제는 물론 다른 사이트에 허락 없이 퍼 올리는 것을 강력하게 금합니다.

 

멕시코와 영국은 미국의 서부로의 확장에 분노했다. 1840년대에는 서부 지역의 영토를 사이에 두고 미국과 멕시코, 영국간의 갈등이 심해졌고, 작은 전쟁들이 일어났다. 우선, 미국과 멕시코의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텍사스 영토였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당시 스페인 소유에 있던 텍사스는 자연스럽게 멕시코의 땅이 되었다.
루이지애나 주 옆에 있는 비옥한 땅 텍사스를 소유하기를 원했던 미국은 멕시코로부터 텍사스를 사기 위해 여러 번 가격을 제안하며 팔 것을 요청했지만 멕시코에서는 계속 거절했다. 하지만, 텍사스에는 멕시코 사람들이 그다지 많이 살고 있지 않았고 미국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계속 미국 사람들이 옮겨가 정착해 살았다. 멕시코 정부에서도 1823년부터 텍사스의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 정식으로 미국인들의 이민을 허락했다. 이것은 멕시코 정부의 큰 실수였다. 싸고 비옥한 텍사스 땅이 탐난 많은 수의 미국인들이 이민을 갔고, 곧 텍사스 인구의 상당수가 미국 이민자들로 이루어졌다.

미국인 이민자 수가 늘어나자 멕시코 정부는 그제야 위협을 느꼈다. 거기에다 미국인들은 멕시코인들과 달리 카톨릭 종교를 믿지 않았고, 흑인 노예들까지 데리고 왔다. 멕시코 정부는 노예를 모두 해방해야 하고 카톨릭 종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법령을 발포했으나 미국인 이민자들이 이를 무시하자 1830년에 미국인들의 텍사스 이민을 금지하는 법을 발표했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의 법안들은 별 효과가 없었다. 미국인들의 이민은 계속 되었다. 곧 미국인 이민자들이 대다수였던 텍사스는 멕시코로부터 독립된 정부를 세우게 해달라고 멕시코 정부에 요구했다.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1835년 텍사스 사람들은 반란을 시작했다. 지금 미국의 4번째로 가장 큰 도시인 휴스턴의 이름의 기원이 된 샘 휴스턴(Sam Houston) 장군이 이끄는 텍사스 군대는 1년 동안의 싸움 끝에 1836년 멕시코 군대를 물리치고 독립을 했다.
하지만, 새로 세워진 텍사스 공화국(Texas Republic)과 멕시코 간의 소규모 전쟁들은 양국의 경계선에서 계속 되었다. 텍사스는 싸움이 불리해질 때마다 미국 군대의 도움을 받았다.

1845년, 미국은 텍사스 영토를 합병했다. 새롭게 텍사스 땅을 차지한 미국은 뉴에세스 강(Nueces River) 지역의 땅이 텍사스 소유라고 억지를 부렸다. 텍사스 땅을 뺏겨 지금까지 이를 갈아온 멕시코는 미국과의 전쟁을 위해 군대를 모집했다. 1846년 4월, 멕시코 군대가 리오그란데 강 (Rio Grande River.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이루는 강)을 건너면서 전쟁(Mexican War)은 시작됐다.
하지만 멕시코 군대는 미국 부대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미국 군대는 텍사스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멕시코까지 쳐들어가 여러 곳에서 벌어진 전투들에서 승리했다. 1847년 9월에는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Mexico City)까지 정복했다. 결국 멕시코는 미국과 수치스러운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1848년 2월에 있었던 이 협상을 통해 멕시코는 현재의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 뉴멕시코, 콜로라도와 와이오밍까지를 망라하는 엄청난 규모의 땅을 천만 달러라는 헐값으로 미국에 넘겨야 했다. 그 땅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별로 안 사는 사막이거나 산악 지역이었지만, 사실 지금은 전 세상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오는,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들(요세미티(Yosemite),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시에라 산맥(Sierra Mountains), 타호 호수(Lake Tahoe) 등)이다.

서부의 땅을 놓고 멕시코와 전쟁을 하던 당시 미국은 오리건 영토(지금 미국의 오리건, 워싱턴 주와 캐나다 서부의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British Columbia))를 사이에 두고 영국과 전쟁 직전까지 갈 정도로 갈등이 심했다. 미국은 오리건 영토 전부를 미국의 땅이라고 주장했다.
미국과의 전쟁이 있을 경우 승리할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영국은 오리건 영토를 49도 선을 기준으로 나누어 북쪽은 영국, 남쪽은 미국의 영토로 만들자는 제의를 했다. 멕시코와의 전쟁 때문에 또 다른 전쟁을 피하고 싶었던 미국 국회와 포크는 영국과 합의를 함으로써 현재 미국과 캐나다의 서부 지역 경계선이 이 때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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