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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서부 지역으로 확장을 할 때 미국 동부 지역에서는 산업 혁명을 불러일으킨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1840년대와 1850년대는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발달이 눈에 띄게 이루어지면서 경제 성장이 빨라졌고,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이제는 말이 이끄는 마차보다는 전차가 사람들과 물건들을 먼 거리까지 수송하는 보편적인 수단이 되었다. 1844년엔 새뮤얼 모스가 전신을 발명함으로써 멀리 떨어진 곳까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농업 기술과 제조업의 발전 (강철 제설기(steel plow), 기계화된 수확기(mechanical reaper)와 재봉틀(sewing machine) 등이 이때 발명됐다)은 미국 내에서 무역이 성행하도록 만들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철, 총, 재봉틀, 양모, 옷, 신발, 시계, 농업 관련 장비 등이 모두 개인적인 소규모 제작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장 생산으로 바뀌었다. 이전의 다품종 소량의 수공업 생산 형태에서 대량 생산으로 바뀐 체계는 결국 미국 산업혁명을 불러왔다. 1840년에서 1860년까지 20년 간 미국이 일으킨 경제적 성장은 유럽의 빈민들 4백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이민을 오도록 만들었다(당시 미국 인구는 약 2천만 명이었음). 상당수가 기아로 허덕이고 있던 아일랜드 사람들이었지만, 독일에서도 많은 수가 이민을 왔다.
1848년에는 캘리포니아 북쪽에서 금이 나온다는 소식이 미국 전역으로 퍼지자, 온 미국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태평양에 맞붙은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이곳에서 채굴한 금들은 미국 서부 지역의 경제를 활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덕분에 태평양 해안의 여러 도시들은 인구가 급증하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동부에서 서부까지 미국 대륙을 가로로 연결하는 전선과 철도의 선로를 만드는 거대한 작업들이 계획되었다.
그렇다고 1840년대에서 1860년대의 미국 사회를 산업 사회라고 규정할 순 없다. 여전히 가장 많은 인구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국가의 주된 산업도 농업이었다. 특히 남부 지방은 완벽한 농업 사회였다. 하지만 북쪽은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전환하는 뚜렷한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결국 남과 북의 이런 산업 형태의 차이는 노예 제도와 함께 양측을 더욱 분리시키는 역할을 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1820년대 미주리가 주로 승격되면서 노예 제도를 인정하는 주와 인정하지 않는 주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법안이 통과되고 난 후, 미주리 북쪽(36。30’ 선을 기준으로)에서는 노예 제도를 완전히 폐지시켰었다. 노예 제도 폐지를 주장하던 북측과 노예 제도의 존속을 주장하던 남측, 양쪽 다 이에 만족하진 않았지만, 일단 급한 불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멕시코로부터 엄청나게 넓은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면서 노예 제도에 대한 새로운 논쟁이 국회에서 격렬하게 시작되었다. 멕시코에게서 빼앗은 텍사스, 캘리포니아, 뉴멕시코의 영토가 36。30’ 선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법대로라면 이곳은 노예 제도가 인정이 되는 지역인데, 북쪽 주들의 국회의원들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넓은 땅이 노예 제도가 인정이 된다면 남쪽 세력이 크게 확장이 되는 것이라 북쪽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런 와중에 1854년에 노예 제도 논쟁에 더 크게 부채질을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스티븐 더글러스(Stephen Douglas)라는 일리노이 주 민주당 상원 의원이 캔자스와 네브래스카의 영토를 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더글러스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야망이 큰 인물이었고, 새로 얻은 영토에서도 민주당이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36。30’ 선 위에 있기 때문에 사실 노예 제도를 인정하지 않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던 캔자스와 네브래스카 영토의 노예 제도를 투표를 통해 정하자고 제안했다.
북쪽 출신인 더글라스로서는 남쪽 지역 의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취한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동시에 더글러스는 캔자스와 네브래스카 지역을 빨리 발전시켜 자신의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시카고에서 태평양까지의 철도를 건설해 상업을 확대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예 제도를 두고 발생한 갈등으로 인해 그의 철도 건설 계획 등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남쪽 의원들은 미주리 주 승격 시 생긴 법안을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들고 일어섰다. 계산이 빗나가 버린 더글러스는 남쪽 의원들에게 오히려 비난당하는 양상이 되어버렸고,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안은 국회에 상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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